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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책 및 생활 정보

세번째 상악동낭종제거 수술 후기..

by 자몽라임with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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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하사생활하면서 온갖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일이 겹쳐 수술을 했다. 안타까운 건 대학병원과 군 병원 시티나 엠알아이에선 발견 못하고 1차 병원에서 발견한 뒤 다시 소견서를 가지고 대학병원에 입원을 한 후 수술을 했다.

그 뒤로 3년 후 수술을 잘못했는지 자체적인 원인불명의 재발인지 몰라도 다시 낭종이 생겨 대전의 한 치과대학병원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때도 정말 최악의 상황 그 자체였다. 알바계약이 끝나고 수중에 남는 돈도 별로 없는 와중에 개인적인 가정사까지 겹치다 보니 별의별 안 좋은 생각이 마저 다 들었다. 2018년 여름. 그 이후로 돈을 벌기 위해 부랴부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으나 정말 너무나 후회했다. 그 당시 선택지가 별로 없고 어학과 자잘한 자격증을 제외한 기사자격증을 취득을 못한 상태이다 보니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열정적으로 일이라도 배우자는 마인드로 일을 하고 싶었건만 나중 돼서 여기서 내가 배운 것보다 내가 이 회사에 정부지원정책이나 각종 세제혜택등 알려준 것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별로 상종하기 싫었던 건 연봉을 13개월을 나누는 악습을 어느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도 없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자체가 다들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아님 잘못된 세뇌가 된 건지 굳이 알고 싶지도 파고 싶지도 않았다. 본인들이 선택하고 거기서 쭈욱 매달려 살아온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 뒤로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수술대에 올랐다. 낭종자체가 재발이 잘된다고는 들었으나 이렇게 까지 재발이 잘될줄은 몰랐다. 건강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해서 두 달에 한 번씩 다른 여러 치과병원에 들러 낭종이 났던 부위에 엑스레이와 시티를 찍으며 재발을 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과 관리를 해왔으나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다.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 회사 말고 경기도 공공기관에 있을 때는 다행히 사전설명을 다하고 이해를 받아 병가를 받았으나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공항자회사로 옮긴 뒤로 포지션이 너무 난처하게 되어 나도 나중에 어떻게 될 줄을 모르겠다. 겨우겨우 병가를 받아 수술을 받았지만 솔직히 좋은 인상을 못줄 걸라 예상한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됐는데 병가를 썼으니 윗분들에게는 별로 좋은 인상을 못줄게 뻔했다. 그런데 어쩌겠나. 눈치는 받을지 언정 내가 죽겠는데 내가 먼저 살고 봐야지.

 전날에 가서 입원을 하고 다음날 수술예정이라 각종 주사와 안내사항을 받았다. 입원실은 5층이고 3인실이지만 다행히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전에 골절수술한 것처럼 할배들의 코골이공격은 안받아서 다행이었다. 다만 또하나의 복병이 숨어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다. 입원실이 5층이라 1층 소음이 적게 들릴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시공시 통유리를 한것 같다만 그리 질 좋은 유리와 두꺼운 유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아 1층의 떠드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래도 그런 소리는 양반이었다. 밤 12시부터 새벽 시간대의 오토바이의 머플러 소리는 왜 이리 큰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버스나 트럭보다 배기통소리를 왜 크게 하고 다니는지 정말 이해하고 싶지 않은 종족들이다. 내세울게 오토바이 머플러소리밖에 없는 건가? 한편으론 불쌍한 생각마저 들었다. 저러니 사람들이 시선과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건데 그 이미지들을 안 좋게 스스로 박살내고 있으니 굳이 어쩌면 당연한 일상이라 생각이 든다. 시끄러운 소리와 겨우 전쟁?을 치르고 잠이 들고나서 새벽 6시쯤 혈압과 체온 그리고 각종 주사들을 놓으러 간호사 선생님들이 오는데 솔직히 별로 잠도 못 잤다. 푹 좀 자고 싶은데 각종소음에 겨우 눈 좀 붙이나 싶었은데 아침 6시부터 이런저런 준비과정 때문에 선잠만 잔 느낌이다. 

 

 나의 수술시간의 오후 한 시가 되어 잡혀있었다. 그전까지 살짝 시간이 붕뜨는데 정말이지 착잡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도 하기싫었다. 입안을째고 낭종을 제거 한후 다시 실로 꼬맨 다음 다달이 통원치료를 받으러 와야되는데 어휴 시간과 에너지를 또 한번 쏟은 생각에 진저리가 났다. 이 수술 이틀후에 또 다시 오른쪽 손가락 핀제거수술을 받으러 가야되는데 아주 찰나 이지만 정말 살기 싫다 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잠깐이나마 한것 같다.

 

오후 한시가 되어 내 차례가 왔다. 수술방으로 옮겨지고 침상을 옆으로 누워달라는 말에 몸을 움직여 내 얼굴 위 무영 등이 보이는 침상에 누웠다. 각종 신호음과 기계음 그 특유의 뚜 뚜 뚜,, 또는 삐, 삐 , 삐 이런 소리가 들리는데 내가 무슨 시한부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하 착잡한 생각 만들었다. 잠시나마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의 마취가 들어갑니라는 대사를 듣고 나는 눈을 감았다.

 

한 시간 후 역시나 "환자분, 환자분"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들었다. 

역시나 뭔가 입에서 얼얼하고 통증이 있었고 그전에 내가 보호자 자격으로 부탁한 대학교 친구가 와있었다.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말은 안 떨어지고 눈도 떨어지지가 않아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며 의사소통을 했다. 이건 뭐 벙어리도 아니고...

친구가 수술할 때까지 한 시간 반가량 기다려줬다고 한다. 혼자 온건 아니고 남자친구와 같이 와서 기다렸다는데 솔직히 그분한테는 미안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초면인 사람에게 나의 수술을 기다리며 본인여자친구를 기다리게 했으니..

그래도 뭐 어쩌겠나.. 나는 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전혀 1도 하지 못하고 다만 손과 고개로 친구가 이제 갈게 라는 말을 듣고 손을 내저으는 행동밖에 해주지 못했다. 빌어먹을 몸뚱이 왜 이리 힘든 건지.

참고로 수술 전 검사로 한 9만 원 정도 지불한 거 같다 그리고 최종수술비는 80만 원 초중반대로 냈다. 실비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차라리 실비보상 안 받고 수술 안 받는 게 백 배 천 배 났다. 진짜 너무 짜증 나고 고통스럽다. 오늘도 핀제거 수술받고 오는 길인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된 신세 같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모냥 이 꼬락서니 이은 지는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내일을 맞이하러 가야겠다. 그나저나 또 이사준비는 언제 하지.. 졸라 하기 싫다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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